[2007 NL 콜로라도의 신화] 콜로라도로키스가 만들어 낸 희망
2009. 9. 5. 21:21 |
[체리쉬의 MLB 프로젝트]
October 1, 20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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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들어 낸 콜로라도...
어제 잠을 늦게 잤는데도 시간이 되자 잠에서 깼다. 바로 이 경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9월 중순 이후 폭주하고 있는 콜로라도 로키스를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었고, 그가 3할을 치는지 못 치는지 내기가 걸려 있는 앳킨스, 그리고 NL ROY의 주인공이 될(?) 툴루위츠키에 많은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로키스를 응원했다. 9월 중순 3연패를 할 때까지만 해도 얼핏 보기엔 로키스의 플옵 진출은 불가능으로 보였지만, 스포츠에는 불가능이란 없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샌디에이고와 원게임 플레이오프진출전을 치르게 됐다.
그들은 어메이징했다. 동부지구 패권이 메츠가 아닌 필리스에게 돌아가며, 메츠는 플옵기회마저도 잃어버린 것과 정 반대로 말이다. 콜로라도는 9월 16일부터 보름간 단 1패만 기록하고 모두 이겼다. (12승 1패), 이 엄청난 승률은 샌디에이고와 애리조나가 막판 주춤하는 것을 틈타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찾아왔다. 그야말로 '일기일회'였다.
많은 사람들은 콜로라도의 이러한 파이팅을 반겼으며, 국내에 거의 팬이 없는 로키스를 오늘 게임에서도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는 12년만에 플옵에 진출할 수 있는 '일기일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의지, 그리고 그보다는 만년 약체로 평가받던, 플옵 컨덴더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들이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메이저리그라는 '되는 팀이 또 되는' 경향이 있는 트렌드를 깨뜨린 그 신비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막판 투혼과 파이팅은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 했으니까..
다저스를 밀어내버린 더블헤더 스윕은 이를 알렸다. 9월 18일 (미국시각) 다저스를 상대로 더블헤더 스윕을 거두며 연승행진을 시작한다. 특히 2차전에서는 리그 최고의 마무리(방어율상) 다카시 사이토를 토드헬튼이 격침시켰다. 이는 강타자 헬튼의 플옵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고, 결과적으로 선수들의 사기를 드높였다. 나는 이 순간을 올시즌 가장 멋진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각설하고, 많은 메이저리그 팬들을 설레이게 한 이 경기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보기로 하겠다. 결과적으로 콜로라도가 캐롤의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승리했고, 그 경기는 연장 13회까지 가는 접전이었으며 올시즌 최고의 명승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위에 박스 스코어 참조) 개인적으로 엔리오 모리꼬네의 내한공연을 포기해야만 하는 아쉬운 심정에 위로가 될 수 있는 한 편의 여유이기도 했다.
선발투수의 무게는 당연히 리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피비'에게 있었다. 하지만, 피비를 상대한 콜로라도 타자들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헬튼을 선두로 할리데이,설리반,앳킨스 등이 3할 이상을 쳐 주고 있었기에 나는 콜로다도가 밀리지 않을 수 있는 경기라고 생각했다. 콜로라도는 2연승 중이었고, 샌디에이고는 2연패 중으로 팀 분위기도 콜로라도가 우세했으며, 무엇보다 콜로라도의 홈구장인 쿠어스필드에서 경기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그 엄청난 관중들의 환호소리는 선수둘에게 시너지로 작용할 것이었기에.. 쿠어스필드는 오늘 꽉 들어찼고, MVP 컨텐더 맷할리데이가 나올 때마다 "MVP"를 이구동성으로 연호하는 판타스틱한 시너지를 선사했다.
경기 하이라이트
야구 초반의 분위기는 피비를 흔들리게 하며 예상대로 흘러갔다. 토렐바의 홈런까지 3:0 으로 2회까지 콜로라도가 앞선 것. 하지만, 샌디에이고는 피비의 안타를 시작으로 애드 곤조가 만루홈런을 작렬시키며 3:5 로 경기를 뒤집었다.
이후 콜로라도는 꾸준히 피비를 괴롭혔다. 천적 헬튼은 피비의 공을 담장으로 넘겨버렸으며(4:5), 툴루위츠키는 2루타를 치고 나가 NL 타점왕 할리데이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았다. (5:5), 그리고 6회말 대타 세쓰 스미쓰는 3루타로 마쓰이의 희생타 때 홈을 밟으며 다시 경기를 쿠어스의 함성 속에 몰아 놓으며 역전했다. (6:5) 7회말 1사 후 앳킨스의 홈런을 주심이 2루타로 선언하며(오심) 추가 득점에는 실패했다.
7회까지 6:5 로 한 점차 리드를 지킨 로키스는 9월의 특급 셋업맨 푸엔테스를 투입한다. 하지만, 샌디에이고 역시 승리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푸엔테스를 상대로 2사 2루에서 자일스가 좌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만들어내며 (6:6) 게임을 연장으로 이끈다. 이 때 할리데이의 수비가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RISP 상황이었기 때문에 할리데이는 전진수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8,9회, 돌입한 연장에서는 양팀 불펜진의 투혼이 빛났다. 샌디에고는 하쓰벨, 브로케일, 대처가 12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았다. 콜로라도는 푸엔테스가 1실점한 것을 제외하고는 코파스가 9회를 막았고, 맷 허지스는 3이닝동안 무실점으로 막아 주었다. 그리고 불펜의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불펜투수들의 난조와 함께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졌다. 13회 올라온 호르제 훌리오는 볼넷에 스캇헤어스톤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하며, 샌디에이고의 승리 분위기로 이끌었다. (6:8) 다시 헤들리에게 안타를 내주었으나 바뀐 투수 라몬오티즈가 후속 3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며 역전할 수 있는 단 1회만 남겨두게 되었다.
스코어는 2점차였지만, 타순이 1번부터 시작해서인지 많은 중계방의 네티즌들은 콜로라도의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했고, 드라마가 연출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마무리는 '지옥의 종소리'라는 트레버 호프만. 펫코 파크가 아니어서 그런지 그는 초반부터 좋지 못했다. 선두타자 마쓰이는 초구,2구를 볼로 보내고 컷트컷트 해내다가 중전 2루타를 터뜨렸다. 그리고 신인왕(오늘 경기의 유연한 수비는 정말 그림 같았다. NL로이는 내꺼) 되고 싶은 툴루위츠키는 다시 호프만의 공을 좌중간으로 갈라버렸다. (7:8), 그리고 MVP 연호 속에 기정 사실 MVP가 되어버린 맷 할라데이는 호프만의 초구를 받아쳐 자일스의 키를 넘겨버리고 툴루위츠키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8:8) 3루까지 냅다 달렸다. 느린 발로 3루타를 만들어 낸 할라데이의 투혼은 여기에서도 빛났다. 동점에 무사 3루, 다음 타자는 헬튼이었다. 호프만은 헬튼을 걸렀고, 다음엔 대주자로 앳킨스의 자리를 메꾸고 있던 제이미 캐롤이었다.
사실 무사 1,3 루에 8:8 이라면 100%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만, 승리의 무게는 콜로라도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캐롤은 자일스쪽으로 너무 정직하게 타구를 날렸고, 발느린 할리데이는 승리에 대한 집착으로 마구 뛰었다. 타이밍상 아웃이었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콜로라도 편이었고, 바렛은 그 송구를 놓치고 말았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며 피까지 흘린 투혼을 보인 할리데이의 결승 득점이었다. 할리데이는 마지막 타석에서 3루타로 단독 타점왕에 등극했으며, 타격왕에도 올랐다. 홈플레이트를 밟지 않았다는 논쟁이 있지만, 그 상황에서 아웃을 선언할 수는 없는 분위기였고, 샌디에이고는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콜로라도의 승리였다. 콜로라도 선수들은 벤치에서 모두 튀어나와 서로를 부둥켜 껴안았다. 이러한 스포츠에서 승리한 팀이 보여주는 쇼맨쉽이자, 참 정겨운 장면이다. 선수들간에도 트러블이 있을 수 있고, 경기를 하며 훌리오처럼 역적이 될 수도 있을 뻔한 선수도 있었겠지만, 승리의 그 순간에는 모두 함박웃음을 즐기며 그 승리의 기쁨을 함께 한다. 반면, 패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이 없다. 이러한 극도록 상반된 장면은 너무 '승자'가 강조되는 스포츠의 어두운 면을 제시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승리'에서 팬들이 느끼는 흥미와 그러한 모습을 보며 함께 기분 좋아지는 그 맛 때문인지 좋아서 그 부둥켜안고 방방 뛰는 모습이 나는 마저 좋았다.
승리, 그 승리의 의미
오늘 경기는 승리는 콜로라도가 했지만,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주연은 콜로라도였지만, 양팀 모두 총력전을 펼친 (16명의 투수와 대타 거의 다 소진) 경기였던만큼 경기 내용 자체가 훌륭했다. 말 그대로 명승부였다.
그렇다, 보름전까지만 해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팀이 막판에 13승 1패를 거두며 와일드카드 티켓을 따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의 힘이다. 스포츠는 이래서 재미있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며, 막판에 이상한 역전승이 일어나기도 한다. 연장 13회까지 와서 팽팽하던 균형이 2점차로 깨진 순간에도 리그 A급의 마무리라고 평가되는 500세이브의 전설 호프만을 상대로 이 로키스 악동들이 드라마를 쓴다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오늘 보았듯 그것은 현실에서 가능했다.
메이저리그는 양키즈와 보스턴 (플옵 단골) 등 강팀이 정해져 있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 디트로이트가 약진한 것 이상으로 올시즌은 로키스를 비롯해 컵스,인디언스,필리스 등이 파드레스,다저스,메츠,타이거즈 등에 앞서서 PO티켓을 따냈다. 이는 올시즌 메이저리그가 얼마나 흥미진진해지고 있는지를 반추할 수 있게 해주며, 점점 영원한 강팀, 영원한 약팀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년 시즌 보토와 제이브루스가 타선의 중심에 서게 될 신시내티가 하랑-아로요-베일리 트로이카로 NL중부에서 돌풍을 일으킬지도 모르고, 루크 호체바가 제자리를 잡는다면 로얄스가 기회를 잡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소 영역이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아담 셰보르스키는 선거에서 승자가 정해져 있을 경우, 그 과정이 민주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불확실성의 제도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스포츠에서도 매년 그 승자가 정해져 있다면, 그 팀을 응원하지 않는 팬이 아니라면 그 스포츠에 흥미를 갖기 어렵다. 꼭 1년이 아니라도 강팀과 약팀의 승부에서 약팀이 승리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진진한 일이 된다. 그것은 스포츠배팅(프로토)에서 고배당 게임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여 많은 토터들의 주머니사정을 악화시킬 수 있지만, 스포츠 그 자체만으로 놓고 봤을 때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스포츠의 재미는 이 '불확실성'에 있는 것이다.
로키스는 설마설마 했던 불확실성이 '불가능'으로 바뀌지 않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고, 그들은 승리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불확실성은 '확실성'으로 바꾼 것이다. 그들은 NL 플옵에 환영받을 자격이 있다.
물론 로키스가 내가 현재 응원하는 팀이기 때문에, 이러한 감흥이 더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파드레스의 팬들은 마음이 아플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분명 오늘 로키스가 보여준 드라마, 아니 9월 중순 이후 그들이 보여준 플옵에 대한 집념과 그리고 그 달성에는 누구나 박수를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