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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L 동부지구 순위 - mlb.com)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는 많은 주전 선수들의 장기적인 부상과 치퍼존스의 잦은 부상 속에서도 필라델피아, 뉴욕메츠, 플로리다말린스 등을 제치고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를 질주하고 있다
.

어제 0-3 으로 완봉패를 당하며 플로리다와의 루징시리즈 이후 슬럼프에 빠져들 수 있었던 브레이브스의 에이스 팀헛슨은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야만 했다
.

상대전적 9 1패 방어율 1.51 이라는 환상적인 천적관계에 있던 워싱턴을 상대로 타선의 도움을 3점밖에 받지 못한 가운데서도 7.2이닝동안 단 1실점만을 허용하며 승리를 거둬 시즌 11승째를 챙겼다. 필라델피아 역시 괴물 로이할라데이의 역투에 힘입어 승리했지만, 애틀란타의 승리로 승차 3.5 게임차를 유지하였다
.

팀헛슨의 오늘 승리는 애틀란타가 슬럼프에 빠질 수 있는 상태였다는 점에서 더욱 값졌으며, 2009년 토미존 수술을 받은 이후 재기에 성공한 그의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MLB TV로 이 경기를 지켜 본 나는 나의 페이보릿 피처가 너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오늘의 승리 주인공, 팀 헛슨에 대해 한 번 소개해 보겠다.

이상하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장 믿음직스러운 투수 중 한 명이 되어버린 팀 허드슨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란다.

 

 

팀 허드슨의 데뷔 이전

 

팀허드슨은 드래프트 6라운드로 오클랜드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본래 타자의 소질을 가진 듯 했다. 대학시절 장타력과 컨텍트 능력을 갖춘 유망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권유에 의해 투수로 전향했다.

 

전향한 후 마이너리그 AA 에서 3승무패 0.00, AAA 에서 4승무패 2.20 을 기록하고 메이저리그에 바로 뛰어든 그는 드래프트 6라운드에서 지명된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선수였다.

 

일단 6피트라는 그의 작은 체구는 그를 대단하게 평가하지 않게 하는 하나의 꺼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가 많은 메이저 경험없이 바로 빅리그에 뛰어들었으니 또 하나의 메이저리그 투수계에 태풍이 몰아친 것이다. 마이너리그 경험없이 올라온 허드슨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가 데뷔했을 때, 크게 주목받지 못했었지만 나는 이 투수의 성장을 예감했다. 그러한 예감은 적중했다. 이는 내가 헛슨을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1999 (데뷔 해) : Ace Killer, 페드로와 랜디를 모두 격침하고...

 

팀헛슨이 빅리그의 문을 처음 두드리는 시기이다.

어린 투수, 얼마나 잘해낼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뿌리채 뽑아버리듯 데뷔 첫  11 2패에 방어율 3.23 을 기록했다.
삼진도 1이닝당 1개 쯤을 잡아내었다. 그는 작년 그의 공 맛을 보지 못한 타자들에게 총 8개의 홈런만을 허용했으며 꽤 낮은 피안타율로 A's 의 에이스가 될 가능성을 확인했다. 6월부터 11승이라면 풀시즌으로 뛰었다면? 적어도 15승은 무난했을 것이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그에게도 몇몇 뚜렷이 드러나는 문제점이 있었다. SO/BB 비율이 약 2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볼넷이 많았고, 클리블랜드나 시삭스 같은 특정팀에 약점을 보였다. 디트로이트나 볼티모어, 미네소타같은 약팀에게는 상대방어율이 채 2가 안 되는 피칭을 보인 반면 클리블랜드나 시삭스의 경우 10점대의 상대방어율을 기록했다는 점이 현저히 드러났다.

 

그가 볼넷을 허용하고 집중타를 맞는 모습은 전형적인 신인 투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을 때는 늘 도미네이트했다. 주자를 내 주지 않으면서 삼진과 땅볼로 타자들을 요리했다.

 

그리고 그는 당해 양대 사이영위너인 페드로마르티네즈, 랜디존슨과의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했다. 신인 투수가 양대 사이영 위너를 모두 격파한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강한 투수들 앞에서도 자신감을 보였던 그에겐 Ace Killer 라는 별명도 따라 다녔다.

 

그는 직구, 그 중에서도 Super Sinking Fastball. 커브, 체인지업, 슬라이더를 그때그때에 구사했다. 허드슨의 SSF(편의상 그렇게 부르도록 하겠다)는 케빈브라운의 싱커와 매우 유사하며 플라이볼보다 땅볼을 많이 유도해 낸다. 이런 허드슨의 팬들은 그를 작은 Kevin Brown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뜻없는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가끔 난타당하는 것은 앞으로 더 나은 허드슨을 위한 인고의 과정으로 여겨졌다. 기복은 경기 경험으로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운이 89,90 3점대 후반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던 때보다 오히려 그는 더 뛰어났다. 경기 경험으로 경기 운영 능력을 터득하고 조금의 두뇌피칭이 가미될 때 파워풀하지는 않지만 정교한 그의 제구력이 위력을 발할 때, 곧 무너지는 허드슨이 아닌 완벽한 피칭의 허드슨의 모습이 자꾸만 반복될 때 타자들은 공을 쳐도 굴러갈 것이고, 뻗어나가지 못할 것이었다. 낮게 깔리는 그의 위력적인 피칭에 손수무책으로 당할 때가 조금은 빨리 찾아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00 (풀시즌 2년차) : 20승의 위업, 풀타임 첫 해 그는 이미 성장해가고 있었다.

 

보통 풀시즌을 뛰는 2년차 투수들에게는 징크스가 있다.

이러한 징크스를 극복해 낸 케이스가 바로 팀허드슨이다. 허드슨의 2000년 운은 나쁘지 않았다. 4.14 라는 썩 좋지 못한 방어율에 20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으니 말이다.

 

더욱 화려한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와 함께 Hudson 2000 년을 시작하였다. 전반기에 나름대로 훌륭한 투구 내용을 보여주었다.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1.2이닝 9실점한 것 등을 제외하고는 꾸준한 성적을 거둬준 것이다. 1 2패에서 9연승을 내달리며 10 2패로 전반기를 마감하며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올스타전에서 그는 꽤 인상적인 투구를 펼쳤다. Alfonzo, Helton, Vidro 1삼진 포함 삼자범퇴처리했다. 그의 모습은 그때까지만 해도 '역시 유망주 허드슨'이었다.

 

풀시즌이 그의 작은 체구와 체력에는 버거웠는지 후반기 때 그는 팬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안긴다.

 

애너하임전 대참패, 시삭스전 대난타, 클리블랜드전 중반 난타 등. 특히 8월 초, 중반 1 3패에 매우 높은 방어율을 기록하며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는 역시 2년차 징크스를 깨지 못할 그저 그런 한 해 반짝 했던 투수로 인식되어버리기 직전이었다. 다음에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신인투수들에게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828일 벌어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 1안타만을 허용하며 볼넷도 하나만 내주며 8개의 탈삼진을 거두며 시삭스를 셧아웃시켰다. 팀이 어려울 때 그의 진정한 모습을 회복하며 특정팀에 약하다는 모습조차 던져버린 것이다.

 

비록 14승을 했더라도 4점대 후반의 방어율이 뒤따른다면 훌륭한 투구내용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흔히 생각된다. 작년에 8개밖에 안 되던 피홈런이 이미 20개를 넘어섰다. 또 삼진 갯수도 이닝당 0.8개에 그쳤다. 하지만 위안이 된다면 볼넷의 갯수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높아지는 피장타율 속에 사사구 갯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역시 신인 투수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래, 결국 그는 그저 그런 신인일 뿐이었어라는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하지만, 그러한 예상을 뭉개버린 채 그는 9월에 미쳐가고 있었다. 9 10일 탐페베이를 상대로 무사사구 셧아웃을 다시 한 번 이루어낸 것! 그것이 그의 16승째. 20승도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연승이 필요한 그 때 허드슨은 기적을 이루어 낸다. 남은 모든 등판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는 마지막 등판이었던 10 2, 그는 오클랜드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의 투구 내용은 8이닝동안 4안타 2볼넷 10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 그것이 바로 그의 20승째였다. 또 그는 200이닝 이상을 던졌다. (202.1 이닝) 신인급 투수가 풀시즌 첫 해에 20승을 거두기란 감독이 그 투수를 믿어야 하며, 그 믿음에 부응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는 대단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시즌 중반 5점대까지 치솟았던 그의 방어율은 결국 4.14 로 많이 낮아졌고 사이영 투표에서 '2' 득표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1 (풀시즌 3년차) : 현저히 낮아진 방어율.

 

20승 투수에 대한 팬들의 그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컸다. 허드슨은 그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시즌 종료때까지 현저히 낮아진 방어율인 3.37 을 기록했고, 18승을 거두며 최고의 투수로 성장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K/BB 2점대 초반에서 2.55 로 많이 좋아졌다. 데뷔후 가장 많은 이닝인 235이닝을 소화해 내었다.

 

그가 2001년 달라진 게 있다면, 집중타를 맞지 않는 능력을 배양한 것이다. 쉽게 무너지고, 1.2이닝 9실점, 2이닝 6실점이라는 최악의 투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느 정도까지 실점을 허용한 후 다시 괜찮아졌으며 마음의 평정을 찾은 셈이 된다. 그것은 에이스가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이라 생각하는데, 그 부분을 허드슨은 이 해 터득한 것이다.

 

그는 퀄리티 스타트 하는 법칙을 배웠고, 타자들은 그의 페이스에 쉽게 말려 들었다. 특정팀에 약하다는 그러한 징크스도 모두 깬 해였다. 이 해 유망주(영건)에서 정말 리그 최고 수준의 투수로 이미 변해가고 있었다.

 

 

2002 (풀시즌 4년차) : 2점대 방어율 입성.

 

이 해 그는 2001년보다 특별히 나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에이스가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인 위기 관리 능력, 곧 점수를 주지 않는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쌓아 올렸다.

 

시즌 종료 후 그의 방어율은 2.98, 승수는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그의 RS-득점지원-는 그 해 최악이었다) 15승에 그쳤지만 2점대 투수로 입성했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둔다.

 

위기 때 삼진을 잡는 투수와 병살을 유도하는 투수 중 누가 뛰어난 투수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겠지만, 나는 후자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삼진은 그 타자만 처리하는 것이지만, 땅볼로 인한 병살은 2아웃을 만들어내고, 설령 병살이 아니더라도 득점권 선행 주자를 아웃시킬 수 있는 절묘한 방법이기도 하다. 단점이 있다면 깊숙한 내야 안타를 많이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그는 시즌 238.1 이닝(데뷔 후 최다 이닝)을 투구하는 동안 무려 35의 더블플레이를 유도해 냈다. 이는 엄청난 수치이다. 그 이전까지 그의 최다 더블플레이는 18개였다. 2배 향상된 더블플레이 숫자는 허드슨의 위기 관리 능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그는 투구 내용뿐만 아니라 마인드 면에서 최고의 투수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2003 (풀시즌 5년차) : 사이영 위너급 투구

 

그는 또 최다 이닝을 경신한다. 240.1 이닝, 그는 가장 많은 퀄리티 피칭(6이닝 이상 투구, 3실점 이하)에서 메이저리그 투수 중 가장 많은 27개를 기록하며 2.70으로 또 한 번 자신의 방어율을 낮춘다.

내용적인 투구 모든 면에서 캐리어하이 커리어를 기록한다. 피안타율 0.223, K/BB 2.66, 피장타율 0.308 이라는 엄청난 성적... 이런 투수가 사이영을 타지 못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최고의 시즌을 구가했다. 키스 포크가 그의 다섯 번의 승리만 날려버리지 않았다면, 내용상 사이영 위너인 로이 할라데이 이상의 피칭을 보인 그가 사이영을 거머쥐었을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그는 피칭런[(던진 이닝수  * 리그평균 방어율/9)-자책점]에서도 48.8점으로 팀공헌도에서 페드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것도 가정일 뿐, 그러한 가정 없이도 사이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승수가 부족해도 그는 페드로,할라데이,로아이자와 함께 8월까지 사이영 후보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가 8월까지 보여준 성적은 14 4패에 2.40 이라는 방어율이었다. 하지만, 그는 9월에 4.85의 방어율에 2 3패를 기록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2003년 정말 대단했다. 거의 모든 경기 6이닝 이상을 투구했으며 투구수 조절을 위한 방법도 터득해 가고 있었다. 2번의 셧아웃을 포함한 3번의 CG. , 그는 낮경기에서 기가 막힌 스플리트를 보인다.

 

그가 낮(주간)경기에서 6승 무패에 1.39라는 경이적인 방어율을 기록했다. 현재도 그는 낮게임을 지배하는 사나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여러모로 그가 2004년 사이영 위너가 되기에 큰 문제가 없다고 예고하는 해였다. 2003, 그는 캐리어하이를 기록했지만 또 그 기록은 갈아치워질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2004 (풀시즌 6년차)

 

1. 사이영을 향하여...

 

그의 성적은 6월까지 3.25 5(2)으로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투구수관리와 경기운영능력,타자를 맞춰잡는 능력은 오히려 더욱 좋아지고 있었다. 그러한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가 있다.

 

그의 11번 선발등판 중 보스턴과 텍사스를 상대로 한 1번씩의 등판을 제외하고는 모두 7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6이닝도 아니고 무려 7이닝 이상을 투구한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이미 7이닝 이상을 확실히 던져줄 수 있는 투수가 되었던 것이다. 내용면에서 삼진수가 줄고, 피안타가 많아졌지만 더욱 좋아진 G/F 비율, 그리고 병살타(5월이 지난 지금 무려 14)수가 오히려 더 효율적인 투구를 이루어낸 것 아닐까?

 

2004년에도 그는 승운이 없었다.

 

대표적인 경기가 8-4로 리드하고 있던 경기를 중간계투(짐 메이서)의 부진으로 8-10으로 역전패한 그러한 경우, 3-2 리드에서 마무리 아더로즈의 불쇼로 승을 날린 경우를 포함해 총 3번의 승리 찬스를 계투와 마무리가 빼앗아갔다. 그는 승리할 수 있는만큼의 투구를 하는데, 그를 잇는 투수들이 그의 승리를 잇따라 앗아가는 점이 안타까웠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힘 헛쓴' 이겠는가.

 

그는 승리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는 현역 선수 중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함께 통산 승률 7할이 넘는 유일한 투수이다. 투구수조절, 경기운영능력은 리그 최정상이다. 또 당시 6월 기준으로 팀이 4점 이상 점수를 낸 경기에서 68 2패라는 놀라운 승률을 거두고 있었다. 오클랜드가 4점 이상 내는 경기에 허드슨이 등판한다면 거의 지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이제 이기는 법을 깨달았으니 이제 더욱 나아진 투구 내용만 보여주면 된다.

 

그에게 아쉬운 점은 구속인데, 보통 92마일의 직구를 뿌려대지만 그 직구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슈퍼싱킹패스트볼이다. 그 직구는 위력적이고, 내야수 정면으로 떼굴떼굴 굴러갈 뿐이다. 그는 가끔 95 마일 이상의 직구를 긴급한 상황에 뿌리기도 한다. 그는 시즌 전 스프링시즌에 스플리터를 비롯한 두 가지의 구질을 시험해 보았다고 한다. 아직 새로운 구질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완성된다면 그는 더 무서운 투수가 될 것으로 보았다.  

 

2. 커리어 첫 DL, 그러나...

 

지금껏 팀허드슨이 대단한 이유 중 하나는 잔 부상은 있었지만, 큰 부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러한 것도 하나의 대투수가 보유해야 할 능력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는 더 대단했다하지만,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엉덩이' 부분의 통증으로 인해 DL에 올랐고, 6주 정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최초의 DL로 인해 그는 사이영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헛슨 매덕스의 대기록인 연속 15승 행진을 포기하고 두 자리수 승수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는 부상 복귀 이후 여전히 호투하며, 8 17일 볼티모어전에서 공 100개도 안 던지고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두었으나, 가장 중요한 시기인 9월에 2 2 방어율 6.23 으로 부진했다. 오클랜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12승에 방어율 3.53 으로 평범하게 마감하고 말았다.  

 

다행히 그가 겪은 부상은 수술이 필요한 큰 부상이 아니었다. 다음 시즌에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었음은 당연했다.
 

 

2005 (풀시즌 7년차) : 투수왕국 애틀랜타로 이적하다.

 

빌리빈의 돌연 선언, '팀헛슨을 트레이드하겠다'.

 

(오클랜드는 좋은 영건을 늘 많이 보유해 투수 왕국으로 불리우지만, 혹사시킨 후 영건을 받아 오면서 선수를 판다. 빌리빈의 그러한 정책은 필자가 매우 싫어하며, 오클랜드 소속 투수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마크멀더의 지나간 영광을 생각만 해도 화가 난다)

 

결국 팀헛슨을 노리는 8개의 팀 중 본인이 원하는 유망주 댄메이어와 후안크루즈 등을 받는 조건하에 애틀란타로 트레이드 되었다

애틀랜타는 매덕스-스몰츠-글래빈 이라는 3인방을 창출해 낸 투수왕국. 그 중심에는 최고의 투수코치 마조니가 있었다.

 

헛슨이 그런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은 매덕스의 뒤를 잇게 된다는 상징적 의미도 포함하고 있었다그의 부상 상태는 전혀 의심스럽지 않고, 시즌 개막만을 기다리고 있다. 애틀란타는 허드슨과 아니나 다를까 4년간 약 4700만달러에 장기계약했다그는 몸값에 비해 저평가된 액수로 계약했지만, 돈보다는 가족과 이길 수 있는 팀을 택한 그의 선택은 누가 봐도 아름다웠다그는 당시까지 92 39(0.702)를 기록할 정도로 승리를 위한 투수이다. 그 당시 70%의 승률을 넘는 선수는 현역 중 페드로마르티네즈와 팀허드슨 뿐이었다.

그는 애틀란타로 이적한 첫 시즌 쿠어스필드에서 콜로라도에게 3.2이닝 7실점으로 무너지기 이전까지는 방어율 2.18 로 매우 환상적인 투구를 펼쳤었다. 하지만, 부상은 그를 악운의 늪으로 빠뜨렸다.

 

그는 작년 부상 이후 제 모습을 찾는 데 실패했으며, 올해도 동일한 부위의 부상으로 고전했다. 특히 부상을 안고 DL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고 던졌던 몇 경기. 그는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공의 로케이션 또한 예전같지 않았다. 그는 스트라익-볼의 비율이 극도록 좋지 않았으며, 결국엔 DL에 올랐다.

 

* 그가 당시 부상을 안고 던졌을 때의 성적
 

VS Pit 7이닝 3실점 3볼넷 4삼진 ()

Vs Ana 4이닝 4실점 3볼넷 1삼진 (ND)

Vs Tex 2.1이닝 5실점 5볼넷 3삼진 ()


부상 이후 그는 제 모습을 찾았으며, 8 7일에는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시즌 100승을 거두었다. 데뷔 7년차만에 100승을 거둘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다.

막판에 다시 부상 부위가 도지면서 끝내 부진한 가운데 애틀란타의 첫 시즌을 14승에 3.52 라는 허드슨 치고는 부진한 성적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2006 (풀시즌 8년차) : 최악의 시즌

 

그는 2006 13승을 거두었지만 4.86이라는 최악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최악의 한 해를 보낸다. 애틀란타는 그에게 이러한 모습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고, 팬들은 그에게 매우 실망한다.

 

아메리칸리그에서 2점대 투구를 한 투수는 보통 내셔널리그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헛슨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특히 후반기에는 5.35 를 기록하면서 에이스의 모습은 잃어버렸고, 사람들은 한 물 갔다는 표현으로 허드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엉덩이 부상 이후 그는 페이스를 잃어버렸고, 그때까지 그는 제 모습을 찾지 못했다. 그는 팀에 피해를 주지 않고자 하며 아픈 가운데서도 공을 던졌고, 그것은 오히려 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말았다.

가끔 경기도중 빠지기도 했으며, ‘부상을 안고 뛰는 선수의 성적이 좋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13승이라는 승수만이 그의 체면을 유지하게 해 주었을 뿐, 팀의 에이스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한 해였다.

 


2007
(풀시즌 9년차) : 부상을 극복하고


최악의 시즌을 보낸 헛슨은 정말 대단했다. 항상 겸손한 헛슨은 마음속의 고통을 표면적으로 감추어왔다. 그에게 생긴 새로운 동기부여는 윈터브레이크 오프시즌동안에 부상을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쏟게 했다. 어린 나이가 아니었던 헛슨은 긴 시간동안 몸만들기에 돌입했고 다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부상 때문에 제대로 오프시즌 체력훈련을 하지 못했던 헛슨이 이열치열의 자세로 체력훈련에 올인을 해 버린 것이다.

 

"I know I'm better than that and that I'm past all of that. I feel like I learned a lot last year and now I can start moving ahead to being like I normally am."

당시 헛슨이 했던 인터뷰이다. 그러한 헛슨의 자신감은 시범경기에서부터 드러났다.

 

시범경기(스프링캠프)에서 25이닝동안 단 6자책만을 허용하며 2.16 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자신감을 되찾은 그의 모습은 리그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다시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지는 못했지만 부진 탈출에 성공하며 224.1 이닝을 소화하며 16승을 거두었다. 그의 방어율은 3.33 이었다. 4월 한달간 6게임에서 1.40 의 방어율을 기록했지만, 그 페이스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헛슨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항상 겸손하면서 최선을 다하며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4.86의 투수에서 3.33 16승 투수로 되돌아왔다. 팬들에게 약속을 지켰던 헛슨은 이제 브레이브스라는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덧 1999년 데뷔 이후 9년 연속 10승 투수였다.


2008 (데뷔 10년차) : 시즌아웃, 토미존수술, 새 모습을 준비하며.. 

 

헛슨은 2007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쾌속 질주를 한다. 그는 팔꿈치 인대가 손상되기 직전까지 11 7패에 방어율 3.13 의 멋진 성적으로 10년 연속 10승 투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부상이었다. 엉덩이 부상과는 차원이 다른, 팔꿈치 인대가 나가버린 것이다. 수술이 필요했고 재활기간까지 1년 넘게 걸리는 대형 수술이었다.

 

브레이브스는 그를 수술대에 올렸고, 그는 7월 이후 마운드에서 볼 수 없었다. , 내년에 돌아온다고 해도 빨라야 8월이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데뷔 이후 꾸준히 해 온 10승 이상의 성적 또한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는 진정한 시련을 겪었다. 그리고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을 실현하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2009
(데뷔 11년차) : 돌아온 헛슨, 완전하지는 못 해.

팀헛슨은 누구보다 재활 훈련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9월 처음으로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8월 불펜에서 뛰게 하고 내년부터 선발에 합류한다는 등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했으나 그는 본연의 역할인 선발투수로서 마운드에 모습을 보였다.

 

돌아온 그는 7게임에서 2승을 추가했고, 그의 방어율은 3.61 이었다. 부상전처럼 뛰어나지는 못했지만 무난한 성적이었으며 팬들로서는 내년이면 12년차가 되는 헛슨에게 기대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소속팀 애틀란타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그는 조금 더 일찍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각오에 차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소속팀을 우승시키겠다는…. 필라델피아의 아성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그의 욕심은 그때부터 불타오르고 있었다
.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겸손하게 애틀란타와 재계약을 체결한다. 그는 더 높은 몸값을 받고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있었지만, 저렴한 가격에 연장계약을 함으로써 그가 진정 뛰고 싶었던 팀에 선물을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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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데뷔 12년차) : 팀의 지구 1위를 이끌며...


오프시즌 체력훈련에 열중했던 헛슨은 진정하게 부활했다.

현재까지 11 5패에 방어율 2.40 으로 사이영위너 수준의 성적을 내고 있다. 그는 최근 8,9월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만 극복해 낸다면, 올시즌 커리어하이 방어율을 찍을지도 모르겠다.

 

필라델피아를 꺾겠다고 선언한 헛슨은 당당히 브레이브스가 1위에 올라 있는 팀의 일등공신이다. 작년까지 헛슨을 대신해 에이스 역할을 했던 자이어 저젠스가 부상으로 늦게나마 출격할 수 있었고, 데릭로우와 가와카미켄신 또한 부진했다. 네이트맥로쓰(중견수)는 부상으로 대부분 출전하지 못했고, 치퍼존스는 고령화에 따른 잔 부상으로 오마 인판테라는 훌륭한 대체 자원이 그의 역할을 일부 대신해야 했다. 그런 부상병동 속에서 애틀란타가 지구 1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팀헛슨의 부활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쟈니벤터스, 다카시사이토, 피터모일란 등의 셋업진과 빌리와그너라는 확실한 마무리를 보유하면서 항상 문제였던 불펜의 불협화음을 해결한 것도 하나의 큰 소득이지만, 토미핸슨, 자이어저젠스 등 어린 투수 가운데 진정한 팀의 에이스가 돌아온 것은 애틀란타 투수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팀 동료들과 잘 지내며, 겸손하여 귀감이 되기도 한 헛슨은 자신의 성적뿐만 아니라 팀의 케미스트리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과거에 비해 삼진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땅볼 비율이 메이저리그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 중 가장 높다. 조쉬존슨, 에이미 가르시아, 로이할라데이, 아담웨인라이트 같은 괴물 투수들이 많지 않았다면 헛슨도 현재 강력한 사이영후보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12승에 2.21을 기록중이며 완투를 8번이나 해 낸 로이할라데이가 정말 대단해 보인다.

 


(현재 내셔널리그 방어율 TOP 5 - mlb.com)

 

어린 선수들이 한 번씩 크게 무너진다는 것을 고려할 때, 헛슨이 가세한 사이영위너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워낙 괴물 같은 투수들이 많기에 흥미진진한 내셔널리그이다.

 

애틀란타는 현재 지구 1위이고 남은 2달여간 그것을 지켜야 한다. 그 중심에는 헤이우드 같은 괴물신인, 그리고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는 프라도 등의 활약, 불펜의 지속적인 안정성 등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팀의 중심인 팀헛슨이 건강해야 하고, 그리고 지금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소속팀에게 우승트로피를 안기겠다고 장담한 헛슨의 활약을 지켜 보는 것은 팬으로써 너무나 흥미롭다.

그는 화려하진 않다, 하지만 믿음직스럽다.

 

자기를 아는 투수, 헛슨의 멋진 한 마디.


When I first came up, like any young pitcher, I loved strikeouts. It shows dominance. Everybody wants to be Pedro Martinez, Randy Johnson. I've learned that I've got a great sinker, I get a lot of ground balls, and it's easy to get a ground ball double play. I've matured as a pitcher. I understand what my strengths are. 

 

처음에 데뷔했을 때, 다른 어린 투수들과 마찬가지로 삼진 잡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것은 압도적인 것을 보여주니까요. 모든 투수들은 페드로마르티네즈나 랜디존슨처럼 압도적이길 원해요. 하지만, 나는 내가 매우 강력한 싱커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많은 땅볼을 유도해낼 수 있고, 그것은 많은 더블플레이도 유도할 수 있게 하죠. 나는 한 명의 투수로서 성장했어요. 그리고 나는 내가 무슨 장점을 실현시킬 수 있는지를 알았답니다” (체리쉬의 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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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비율이 감소하는 것에 대한 인터뷰 중

 

Written by : Tim Hudson Mania 체리쉬 ( http://cherishh.com )

제가 잭그라인키(KC)와 더불어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그가 나이가 더 들어 노쇠화될 때까지 더 멋진 커리어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MLB 도 진짜 좋아하고 많이 보는데 글을 자주 올리지는 못하네요. 이제 시간날 때마다 올리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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