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이 가르쳐 준 사랑의 힘
2009. 10. 6. 12:30 |
[체리쉬닷컴 아웃사이드]/체리쉬의 문화공감
I. 개론
고 이청준님은 기껏 출판부수나 늘려보겠다는 작가들 틈에서 영원히 문학의 순수함과 자연스러운 현실 고발적 태도를 필력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다. 그 분의 명작 당신들의 천국을 '문학과 사랑'이라는 멋진 수업을 계기로 다시 읽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문학 시간에 그 작품에 대해 토론을 해 본지 어느덧 몇 년이 지났음에도,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느껴지기엔 변함이 없다.
이 소설에서 당신들의 천국이란 일반적인 의미의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천국이라면 유토피아, 즉 이상향을 뜻하고 아무런 갈등과 장애가 없는 그런 세계를 가리키는데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천국은 부조리와 불신, 오해가 빚어내고 있는 숨은 면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천국'에서 드러나는 모든 상황들은 애매하다. 정확하고 명확한 설정이 없는 채로 독자들에게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조금 더 열린 사고를 하게 함으로써 현실을 재해석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생각, 그리고 소재에 대해 여러번 의문을 던지게 되고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돌리고 돌려서 생각해보면 결국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II. '당신들의 천국'이 지닌 의미
우선, 조백헌 대령이 나환자들에게 베푼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한 유토피아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보자.
'1부'에서 그는 나환자들에게 천국을 만들어주겠다며 소록도에 대대적인 공사 작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그들에게 '천국'이라 볼 수 없었다. 예전의 병원장들이 행한 행태는 그러한 대의를 내세워 나환자들을 착취하고 병원장 자신들을 영웅화시키는 데 불과했기 때문에 조백헌 대령의 이러한 시도조차 그들에게는 큰 공감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심한 갈등을 겪는데, 조백헌 대령의 생각은 어땠을까. 소설 속에서는 아무 것도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의 영웅심리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릴적부터 수재민 성금 모금이니, 불우이웃돕기니 할 때 TV에서 '실명'으로 모 국회의원이 꽤 큰 금액을 기부했다고 하면 저것은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 신문에 누군가가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크게 기부를 했다고 하면 그것 또한 자기의 성취감과 영웅심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았다. 내가 너무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고 그런 모습을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좁은 인격의 소유자여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조백헌 대령 또한 '내가 나환자들을 이렇게 했으니 나는 영웅이야' 라는 심리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명목 하에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천국을 상상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자기의 성취감 및 과시욕을 맛보기 위한 천국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소설에서 전 병원장이 '동상'을 세웠다는 것이나, 조백헌을 그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상욱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킨 것도 '자신만의 천국'임을 경계할 것임을 독자에게 요구하는 작가의 생각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경계선은 3부에서 조백헌 대령이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와서 음성 병력자 윤해원과 건강인 서미연의 결혼 축사 연습을 하는 모습을 통해 지워진다. '자신의 천국'을 '우리들의 천국'으로 바꿀 수 있는 화합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바로 '나'도 '당신'도 아닌 우리가 모두 공존하고 화합할 수 있는 우리들의 천국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III. 정상인과 환자의 차이
우리는 은연중에 정상인과 환자를 구분하려고 한다. 나는 정상이고, 아무런 장애 없이 활동할 수 있으니까 장애인과는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현대인의 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듯 하다. 나환자를 대상으로 일반적인 정상인이 가진 '환자'에 대한 생각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드러내며, 환자들에게 살해당한 전 병원장의 모습은 차별의 금지 욕구를 발생시킨다.
몇 년 전 서울대학교 면접 기본소양 문제가 떠오른다. "장애인 딸을 둔 부모가 장애인으로서 딸의 생활을 비관하여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이는 누구의 책임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에 생명경시현상과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경시하는 풍토라고 두 가지로 나누어놓고 답변을 했는데 결과는 낙제점을 받았다. 교수는 질문과는 전혀 다른 "학생은 장애인보다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라는 새로운 의미의 질문을 던졌다. 나는 도덕성 테스트라 판단하고 임기응변으로 당연히 "나와 장애인은 동등하다"고 답했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교수는 다음으로 영구와 땡칠이 이야기를 들으며 "영구 같은 사람을 보면 웃기지 않느냐"고 질문했고 나는 그것에 대해 솔직히 우습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런 사람을 보고 웃는데, 소아마비 환자의 행동을 유심히 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교수의 반문에 할 말을 잃어버렸던 아픈 기억이 생생하다.
이 소설에서도 정상인과 나환자를 분류해서 정상인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일반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인식을 꼬집고 있다. 마지막에 환자와 정상인의 결혼을 통해 '그렇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환자다. 신체의 특정 부분이 아프기도 하고, 장애인들의 아픈 부분을 보지 못하는 '봉사'하기도 하다. 우리 생활에만 만족한 나머지 장애인의 아픔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또, 우리가 아무런 병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해도 누구에게나 마음의 병이 있기 마련이다. 상사병이라든가 강박관념 등도 그것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정상인, 환자는 하나의 '사람'일 뿐 구분할 필요가 없다.
IV.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 사랑..
이 소설 속에 모든 갈등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알고리즘에 대해 물었을 때, 정답은 단 하나, 바로 "사랑"이다.
거추장스럽지만 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사랑, 또 정상인과 환자의 사랑, 그것을 넘어서 작가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의미의 사랑은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갈등을 해소해준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당시의 시대상을 담고 있다. 군부 독재 시절의 치자에 대응하는 피치자로서의 시민들을 경시한 시대상에 모두의 천국이 아닌 권력층, 지배층의 당신들의 천국을 연상했던 것이다. 이런 독재 체제는 '모두의 천국'에 이르게 하는 장애물이다. 조백헌 대령의 노력은 진정한 의미의 천국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빗대어 표현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험난한 길을 극복하는 것 또한 '사랑'의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조백헌 원장이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사랑을 통해 자기의 신념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긍정성을 내포하고 있고, 윤해원과 서미연의 결혼 또한 역시나 사랑을 통해 갈등에 대한 자발적인 화합을 이루어내는 것은 밝은 미래를 제시해준다. 비록 결말은 '축사 연습'을 하는 가운데 끝났지만 객관적인 시각을 통해 앞으로 긍정적인 상황이 전개되리라는 화합의 암시를 해 주고 있다.
우리는 늘 사랑의 울타리에서 살고 있다. 남녀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사랑, 그리고 부모와 자식에 대한 사랑 등 그 모든 것이 생활 속의 사랑인 것이다. 어떤 것으로도 대신 설명될 수 없는 지고지순한 개념인 '사랑', 사랑은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많은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있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 바로 '사랑'을 통해 모두의 천국을 건설해보고 싶은 소망이 싹튼다. 이상적인 사회, 그것은 단순한 꿈일지 몰라도 미래에 대한 밝은 모습은 '사랑'을 통해 천국의 모습으로 언제든지 그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