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레바논참사' 라는 표현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
상황논리에 대한 이해
어제 한국축구는 레바논 원정에서 1-2 로 패했습니다. 물론 경기스코어만 놓고 본다면 그것이 한국축구의 위기니 뭐니 하는 말들이 나올 수 있지만 상황논리로 생각했을 때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자 오히려 다행스러운 결과였습니다. 조광래호는 지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져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본 또한 북한을 상대로 평양에서 0-1 로 패했고, 호주 역시 오만 원정에서 0-1 로 패했습니다. 레바논에게 1-2 로 패한 한국을 포함하여 이 세 경기의 공통점은 '반드시 이길 필요가 없는 경기' 였습니다. 국가대항전에서는 반드시 이길 필요가 없는 경우 잦은 이변이 발생하며 그것이 원정이면 더욱 그러한 경향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한국 10
레바논 7
쿠웨이트 5
UAE 0
한국은 쿠웨이트와의 홈 최종전을 남겨두고 있고 쿠웨이트가 UAE 를 이기더라도 (실제 이겼습니다) 홈에서 비기기만 하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쿠웨이트에게 비기기만 해도 된다지만 그보다 레바논이 UAE를 원정에서 쉽게 이길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3차 예선의 최종 목표는 다음 라운드 진출이지 원정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란 없습니다. 모로 가더라도 서울만 가면 됩니다. 한국은 1번의 자력 진출할 수 있는 기회 (vs 쿠웨이트) 가 남아 있습니다.
일본 10
우즈베키스탄 10
북한 3
타지키스탄 0
일본과 우즈베키스탄은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둘의 차이는 홈/원정의 차이였고 일본은 평양 원정에서 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난의 여론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라운드 패한 호주 또한 진출이 거의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까다로운 오만 원정에서 한 차례 쉬어갔습니다. 태국 원정에서도 쉬어갈 수 있었는데 한 골이 들어가며 1:0 으로 신승을 거두었습니다. 중국, 이란, 호주를 추천했던 저로서는 다행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동기부여형 상황논리만 생각해 볼 때 한국이 레바논 원정에서 이겨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중동 원정의 어려움
중동 원정은 어렵다고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일단 기후가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중동지역의 텃세도 상당히 심합니다. 셋째, 레이저빔으로 오늘 골키퍼가 방해를 받았던 것처럼 홈팬들이 치사한 작전을 쓰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카타르클럽인 알샤드와 수원의 경기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앞서고 있거나 비기려고 하는 경기에서는 '침대축구' 및 더티 플레이를 펼칩니다. 그것은 홈/원정을 막론하고 중동팀들의 특징인데 거칠게 수비하면서 상대팀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합니다. 심판 배정 또한 중동심판이 배정되는 등 (이번에도 그랬지요) 편파적인 경기운영적인 면도 발견됩니다.
레바논이 세계랭킹 146위라고 무시하는 언론기사들이 눈에 보이는데 중동의 홈어드밴티지를 고려하면 결코 쉬운 원정이 아닙니다. 더구나 부상으로 인해 스쿼드뎁쓰가 얕아진 상황에서 추가적인 부상자가 발생한다면 장기적으로 더 차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2011년 마지막 A매치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주었기를 바라는 축구팬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꼭 이길 필요가 없는 경기에서 중동 원정을 떠나서 사력을 다해서 싸워야했다면 그만큼의 손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저 순위표가
쿠웨이트 10
대한민국 7
레바논 5
UAE 0
이었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쿠웨이트와의 경기가 남아 있지만 레바논에게 패할 경우 상황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지난 4번의 경기에서 얻어 놓은 승점이 10점(3승1무)이었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또 연속 원정이었습니다. 힘든 중동 연속 원정을 치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레바논까지.. 그렇게 이동을 했습니다. 보통 클럽팀의 연속 원정 성적을 한 번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편견이 깨지심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력 진출이 가능하다면.
동기부여에서 중요한 것은 자력 진출입니다. 다른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진출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쿠웨이트를 상대로 비기기만 해도 다음 라운드 진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력입니다. 레바논의 경기결과에 따라 1,2위가 결정될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다음 라운드 진출이기 때문입니다.
쿠웨이트가 오늘 UAE 를 이겼기 때문에 상황은 재밌어졌습니다. 우리는 쿠웨이트에게 패하면 진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리그의 상황이 아니라 최종전이기 때문에 쿠웨이트가 반드시 이기고자 한다면 특유위 수비축구를 펼칠 수 없을 것이고, 우리의 의지에 따라 지키느냐, 압도하느냐의 갈림길에 설 것입니다.
'비기기만 해도 되는 팀' 과 '이겨야만 하는 팀' 의 대결에서는 비기기만 해도 되는 팀이 유리합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겨야만 하는 팀이 전력이 매우 압도적이지 않는 한 그 상황을 뒤집기는 쉽지 않습니다. 쿠웨이트가 객관적으로 우리보다 나은 전력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
자력 진출이 가능한 조건은 승/무 입니다. 그것은 100% 레바논의 경기결과와는 무관합니다. 한국축구는 최소한 비기기만 했을 때 목표치인 최종예선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날 베팅용지가 주어진다면, 한국승리에 베팅하지 않습니다. 무승부가 나와도 되는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카타르-바레인은 충분히 그 교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냥 패스할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부분은 없을까?
물론 있습니다. 이 경기에 사력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앞서고 있는 자의 여유를 종종 보여준 점입니다. 박주영의 서스펜션, 기성용, 김보경 등의 부상으로 인해 얕아진 스쿼드뎁쓰에서 무리하지 않은 점은 긍정적인 부분으로 보여집니다.
비록 오늘 경기는 패했지만 다음 경기에 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몸상태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구자철은 결장하더라도 더 긍정적인 복귀들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 이겼다면 자력으로 바로 최종예선진출을 확정지었겠지만 원정이기도 했고 아직 자력진출의 기회가 남아 있는 한 한국축구가 오늘의 패배로 비난을 받을 이유, 그것이 '참사' 라고 표현될 수준은 아닌 듯 보입니다.
축구에서의 실리는 경기 내에만 쓰이는 표현이 아닙니다. 저는 전술적으로 스토크시티(EPL)의 퓰리스 감독과 나폴리(세리에A)의 왈테르마짜리 감독에게 선택과 집중 전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폴리가 챔피언스리그에 뜻을 두고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를 앞둔 상태에서의 경기운영을 어떻게 했는지, 퓰리스 감독이 버려야 할 경기를 어떻게 과감하게 보여주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공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경기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술적으로 특정 경기에 중점을 두는 운용도 이제는 존중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호주가 오만전에서 그랬듯, 한국 축구는 한 타임 쉬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플레이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오늘의 패배는 타산지석이 되어 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광래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서 치른 레바논 원정에서 느낀 것, 배운 것이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레바논에게 1-2 로 패했지만, 그 경기는 패해도 되는 경기였고 아직 자력 진출의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상대에 비해 매우 유리한 조건 (홈에서 지지만 않으면 되는 경기) 을 가지고 임합니다. 최선을 다해 중동 원정에서 1승1패를 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또는 소속팀으로 돌아갈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으면 합니다.
'레바논 참사' 가 아니라 더 나아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생각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적어도 이번 패배는.... 그렇게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한국축구가 내년에 있는 쿠웨이트전에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길 기원해 봅니다.
아무튼 어제 한국축구가 아쉽긴 하지만 참사 정도는 아닙니다. 그날이 월드컵 최종예선 결정전인데 그랬다면 그것은 진정 참사겠지만, 어제 경기는 실제로 그 집중도가 매우 높아야 했던 경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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