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그린 그림이란?
2009. 10. 7. 11:50 |
[체리쉬닷컴 아웃사이드]/체리쉬의 문화공감
Entrance to the Wood with a Girl Tending Cows - Camille Corot
사람의 미(美)적 기준은 각기 달라서 아름다움에 대한 객관성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보든, 노인이 보는 "잘 그렸다"고 할만한 작품들이 미술사의 축에 존재한다. 예컨대, 포토리얼리즘 작가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사진기술을 이용하여 있는 그대로를 재현한 그림을 누가 "잘 그렸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사적으로도 미의 기준은 변모해왔는데, 고대 시대와는 달리 과학과 미술을 조화시킬 수 있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회화미술이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이는 미술장르가 예술로 인정받는 첫단계였으며, 따라서 많은 식공의 미적 기준은 르네상스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잘 그렸다는 예술작품이 모두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기준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입체적인 시각화를 꾀한 '파블로피카소'의 그림은 어디에서나 인정받고 있다. 피카소는 자신의 독특한 시각을 진정한 사실성(Reality)의 추구라고 얘기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정한 사실의 추구가 아님을 강조했다. 즉, 피카소는 관객들에게 대상의 본모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피카소와 당대를 지휘했던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 또한 색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여 좋은 그림의 또 다른 의미를 창출했다. 즉, 실제 보이는 색채나 형태가 아닌 관념의 색채나 형태 또한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추상화를 대표한 말레비치, 칸딘스키, 몬드리안의 그림은 '그린다'기보다는 '재구성'함에 의미를 두고 있다. 형체의 재구성을 통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단순한 것들을 "잘" 그려 내었다. 일반인이 쉽게 그릴 수 있는 것들을 최초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그림은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잘 그린 그림이 되었다. 현대미술은 아방가르드 정신에 기초하여 '시작'과 '최초'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을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에 작가의 사상과 생각이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크 시대 카라바치오와 그의 제자 젠틀레스키가 그린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는 작품은 이를 보여주기에 알맞은 작품이다. 카라바치오의 작품이 연극의 한 장면처럼 대상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준 반면, 젠틀레스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복수의 심정을 작품에 드러냈다. 같은 것을 그린 그렸지만, 화가의 취향이나 경험에 따라 그 작품이 지닌 가치의 의미가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동일한 취향과 사상을 가진 관람객일수록 그 작품을 더 잘 그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잘 그린 그림은 시대에 따라서도 변모해왔다. 앞서 언급했던 극사실주의(포토리얼리즘) 이전에 사실주의를 추구한 화가로 19세기 프랑스의 구스타프 쿠르베가 있다. 쿠르베는 대상의 모습을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을 '사실'이라 정의하지 않았다. 쿠르베가 말한 사실은 보이는 현실세계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 모습을 거짓없이 그려냈던 것이다. 반면 캐노비츠,클로스 등의 극사실주의는 대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그렸다. 둘 다 사실대로 그린 그림임엔 분명하지만, 시대에 맞춰 그 의미가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수많은 기준과 관점을 살펴본 결과 "잘 그린 그림"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시대의 문화,배경,사상,분위기는 물론 개인의 성향, 경험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이다. 마찬가지로 그 정의 또한 여러 요인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을 평할 때 있어서, 효용론-반영론-표현론-절대주의적 관점 이라는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내가 잘 그렸다고 생각하는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