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Log

파라과이의 눈물



골 넣는 골키퍼 칠라베르트로 잘 알려진 파라과이에게 2010년 남아공월드컵은 특별했습니다. 파라과이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8강에 올랐고, 더 큰 무대를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남미축구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밀려서 화려함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최근 4번 연속 치열한 남미예선 속에 본선행 티켓을 따내는 등 끈끈히 월드컵 무대를 밟아온 팀입니다
.

파라과이는 남미팀이지만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오며 선수들이 수비조직력을 탄탄히 하면서 팀칼라를 형성해왔습니다. 남미예선에서 브라질과 칠레에 이어 아르헨티나보다 앞선 성적으로 본선에 오르는동안 단 16실점만을 하면서 브라질 다음으로 적은 실점을 했었습니다. 본선무대에서도 8강에서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5경기동안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상대로 단 2실점만을 하는 뛰어난 수비력을 선보였습니다.

 

골키퍼 비야르는 야신상 후보로 손색없을만큼 많은 선방을 통해 팀을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해냈고, 알카라즈, 다실바, 모렐, 카니자 등의 수비라인은 조직력뿐만 아니라 개인기도 갖춰서 다른 팀에 비해 더욱 까다로운 수비라인을 구축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월드컵 내내 드러난 득점 빈곤력 문제는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슬로바키아에게 2-0 으로 이겼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만족스러운 득점력을 보이지 못했으며, 뉴질랜드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부터 스페인과의 8강전까지 단 한 점도 넣지 못하는 아쉬운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습니다
.

본선 전 주전공격수를 잃은 파라과이이기에 더욱 안타까울 것입니다. 지역예선에서 팀의 공격을 이끌었던 살바도르 카바냐스는 괴한의 총에 맞아서 남아공행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팀의 골결정력 문제로 이어졌고, 결국 8강에 만족해야만 하는 큰 원인 중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는 파라과이의 수비벽에 막혀 효율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파라과이가 유효슛팅비율이 더 높은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파라과이의 수비수들은 현명한 위치 선정으로 스페인의 개인기를 개인기로 제압하면서 특히 전반에는 스페인의 공격을 완전히 봉쇄했었습니다. 결국 찾아왔던 4번의 결정적 찬스에서 골결정력 부족으로 탈락하고 눈물 흘리고 말았습니다.

파라과이의 눈물이 더 슬픈 것은, 팀을 오랫동안 이끈 선수들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 기회였다는 것 때문입니다. 특히 파라과이 전력의 핵심이었던 골키퍼 비야르와 주전수비수들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 주어야 합니다.

 

오스카 카르도조의 눈물 (한 편의 페널티드라마)

 


 

너무 슬픈 눈망울입니다. 경기가 끝난 후 PK에 실패하여 카메라는 슬퍼하는 파라과이의 공격수 오스카 카르도조를 자주 비춥니다.

 
(스스로 얻어 낸 PK를 차는 카르도조, 이를 막아내는 카시아스)



(세계 최고의 골키퍼다운 모습을 보인 카시아스)  

 
(절망스러워 하는 카르도조, 포효하는 푸욜)

선제골 찬스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면, 카르도조는 파라과이의 영웅이 될 수도 있었고, 파라과이의 수비력이라면, 또한 남은 교체카드라면 스페인의 공격을 막아낼 수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기에 그 실축은 너무 아쉽습니다. 파라과이를 응원하는 사람이었다면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고, 파라과이에게는 스페인이라는 거함을 격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카르도조가 볼을 차기 전에 스페인 수비수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이 때는 원래 다시 차야 합니다. 카르도조의 슛 실패시 파라과이 선수들이 어필을 했어야 했는데, 그냥 경기가 진행된 것도 조금 아쉬운 장면이었습니다. (못 넣었는데, 다시 차지 않게 한 것은 오심이었습니다)

 

카르도조의 PK실패 이후 바로 알카라즈의 파울로 PK를 내 주었지만, 사비알론소의 슛을 비야르 골키퍼가 막아냅니다.


(정말 잘 찬 사비알론소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비야르 골키퍼)

짧은 순간이었지만 한 편의 페널티드라마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사에 길이 남은 명장면이었습니다. 3분 사이에 발생한 두 번의 PK 선방, 보이는 이에게는 흥미로운 순간이었지만, 킥커에게는 너무도 가슴 아픈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비야르의 선방으로 위기에서 실점하지 않은 파라과이는 꾸준히 스페인을 압박합니다. 하지만, 경기종료 10여분을 앞두고 이니에스타의 절묘한 돌파와 페드로의 골대, 그리고 결정력 뛰어난 다비드비야의 극적인 골로 스페인이 승리했습니다.

 

카르도조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은 감독의 신뢰였습니다. 자신이 얻어 낸 PK를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잘 찼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은 이케르 카시아스의 선방에 막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비 지향적인 축구를 즐기는 마르티노 감독은 카르도조를 주로 조커로 투입했지만, 오늘만큼은 선발로 출장시켰습니다. 카르도조는 실제로 전방에서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큰 덩치로 피지컬에서 스페인의 수비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PK를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그가 있었기에 파라과이의 공격이 어느 정도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예선에서도 카바냐스에 밀려서 조커로 투입되었으며, 이번 대회에서도 뉴질랜드전을 제외하고는 선발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던 카르도조, 오늘 모처럼 선발출장기회를 잡았던 카르도조는 비록 포르투갈리그이지만 벤피카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으며 팀의 공격을 이끌고 있습니다. 상대진영에서의 수비력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공격수에게 갖추어야 할 스피드, 피딩능력, 슛팅력 3박자를 동시에 갖춘 팀입니다.



 

선제골 찬스인 PK를 넣지 못한 카르도조에게는 어제 아사모아 기안(가나)만큼이나 정신적인 고통이 클 것입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들의 자살이 잦아지고 있는 사회적 트렌드 속에서 심리적 죄책감에 있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치안이 위험한 파라과이에서 이 일로 인해 과거 에스코바르(콜롬비아)처럼 안 좋은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계속 카메라에 비춰 진 카르도조를 위로하려는 동료 선수들, 그리고 스페인 선수들의 모습은 훈훈했습니다. 하지만, 카르도조는 대화를 거부하고 유니폼을 뒤집어 쓰면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제와 오늘, 두 편의 페널티드라마를 보면서 페널티킥이라는 것이 얼마나 선수에게 심리적으로 부담을 주며, 그리고 실패했을 때 더 큰 죄책감을 주는지 그들의 표정만 보고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눈물

 

파라과이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면서 파라과이의 높은 경기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결과적으로 스페인이 승리하니 큰 아쉬움만 남습니다. 카르도조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르도조를 투입하지 않은 것을 마르티노감독의 패착으로 보았던 저이기에 그의 실축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약자를 응원한다는 것은 용기있는 일이며,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러한 저의 성향이 예측 적중률을 낮추는 데 일조하기도 하지만, 약자가 이길 수 있는 근거들을 찾아놓고, 그것이 맞아떨어질 때 느끼는 쾌감 또한 말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 강하게 예측했던 브라질과 절실히 응원했던 가나가 탈락하고 말았고, 좋아하는 팀 아르헨티나와 경기전까지만 해도 독일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던 파라과이마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16강전에서 포르투갈vs스페인 경기를 빼고 나름대로의 예측에 성공했었으나 체리쉬의 저주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8강경기에서 승리를 바라던 팀들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참고로 저는 4강에서 매력적인 독일 축구와 약자인 우루과이 축구를 응원할 것입니다)


좋아하는 팀, 그리고 믿었던 축구인 아르헨티나가 독일에게 0-4 로 패한 것은 다소 마음 아픈 일입니다. 0-1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공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아르헨티나는 지쳐버렸고, 그 이후 추가적으로 3골을 더 내 주고 말았습니다. 0-1 이나 0-4 나 패배가 다름없는 토너먼트에서 독일 같이 압도하려는 성향을 가진 팀은 상대팀의 수비공간이 열리면 열릴수록 더욱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기 때문에 대승이라는 결과가 나온 듯 합니다.

그리고, 파라과이는 꼭 이겨주길 바랐습니다. 우선 그들의 팀칼라가 마음에 들었고, 유로파리그를 통해 애착을 갖게 된 카르도조가 뭔가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전문가들의 예측과 달리 스페인의 패싱게임은 이미 충분히 연구대상이 된 상황에서 승부가 쉽게 갈릴 것 같지 않다는 예측 때문이었습니다. 또 스포츠베팅도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이번 경기 주력으로 넣었습니다. 예측에는 후회가 없으나 결과에는 아쉬움이 남네요.

 

두 팀 모두 떨어지니 뭔가 허해지기도 하고, 카르도조의 눈물을 보니 살짜쿵 눈시울도 따가워집니다. 지난번 포르투갈을 응원하며 경기를 지켜볼 때도 비야가 저를 울리더니, 오늘도 비야 이 녀석이 저를 울립니다. (참 비야가 대단한 선수라고 느낍니다)

무엇보다 카르도조가 걱정됩니다. 아직 27살의 어린 선수이며, 다음 월드컵에도 뛸 수 있는 좋은 기량을 갖춘 선수인데 심적 부담감으로 제 플레이를 펼치지 못할까 너무 걱정됩니다. 세계적 스타였던 로베르토 바지오(이탈리아) PK실축으로 팀을 울린 적이 있습니다. 그걸 극복해 낸 바지오를 생각하면서 카르도조가 이 일을 잘 극복해냈으면 좋겠습니다.

 

8강에서 응원하는 팀은 모두 떨어졌지만, 아직 월드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외질, 케디라, 뮬러(4강전에 못 나오지만), 마린, 크로스 등 젊은 유망주들의 멋진 플레이가 매력적인 독일축구를 응원하겠습니다. 하지만 무적함대 스페인은 결코 수비에서만큼은 무시할 팀이 아니기에, 스페인의 지금까지의 경기력만 보고 독일의 압승을 예상하는 분위기는 조금 이른 듯 합니다.

오늘 휴일이라 새벽까지 축구 보신 분들 많으실텐데, 푹 쉬세요. 월드컵 휴식기동안에서는 어떤 글을 써 볼까요? 아니면 조금 이른 프리뷰를
?

응원 댓글과 아래 손가락 클릭은 좋은 글을 쓰는 큰 힘이 됩니다. 저는 밀린 댓글에 답하러 갑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