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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I. 이 영화, 이 느낌.

천재 감독 스탠리 큐브릭, 그리고 지금은 이혼했지만 그 당시 부부였던 헐리우드 느끼남 탐크루즈와 헐리우드 최고의 매력녀 니콜키드만이 함께 만들어 낸 작품이다.

주연들의 연기력은 다른 영화에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감독은 보는 이에게 '왜?' 라는 의문부호를 수없이 던지며 끊임없는 두뇌싸움을 만들어 내며 천재성을 꾸준히 발휘한다.

처음 본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전혀 새로운 관점과 시각에서 영화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성숙한 것일까. 7년전에 보았을 때는 '감독이 머리를 쓰게 하는 영화'라는 정도로 이 영화를 평했다면, 지금은 누구나 꼭 한 번 봐야 할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보지 않고 '나는 영화를 잘 안다' 고 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 하고 싶을 정도이다. 두 번이나 본 나도 잘 모른다.

수많은 사건, 그리고 같은 인물인 것 같은 등장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시나리오들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영화의 종반으로 갈 수록 서서히 정체를 드러낸다. 스탠리 큐브릭이 늘 그러하였듯 이 영화에서도 '관객이 궁금한 것'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영화 중간에 수많은 물음표를 남긴 채 영화를 끝맺는다. 이해가 안 되는 사건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 수록 머리가 복잡해진다. 비중있게 보이는 인물이 단 한 컷에 등장하는 '일회성 등장인물'이 되어버리는 것도 미스테리하다.


II. 결혼제도와 성욕의 모순 관계, 하지만 해결해 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현대의 결혼제도가 인간본성, 엄밀히 프로이트의 성욕과 모순된 점을 안고 있다는 점을 근본적으로 담고 있다.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것인만큼 결혼을 함으로써 '절제해야 하는 성욕'에 대한 소중한 메시지를 안겨 주는 한 편, 쾌락주의자의 입장에서 성욕의 가치를 긍정하고 있다. 즉 이 두가지가 가진 모순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그러한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결혼제도는 인간의 성욕을 억압한다. 도의적인 관점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스토아학파의 관점에서 단 한 사람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한 사람과만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하나의 약속을 뜻한다. 그 약속을 깨뜨리면 사회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며, 양심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그것은 자연스럽게 절제된다. 하지만, 다른 관점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의식주 다음으로 드러난 욕망이 성욕이라고 한다. 어떤 심리학자는 '유아기'의 구강기에 이미 성욕이 실현화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욕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이를 억제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이다. 부부교환 등을 용인하는 가치관을 지니는 사람들은 이러한 견해에 동참할지도 모르겠다. (Oh! No!)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고하다. 성욕이 아무리 본능이라고 해도, 본능에 앞선 이성의 힘이 인간 누구에게나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능을 우선시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만약 내 배우자가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고, 나 또한 한 사람에게 충실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그들끼리 어울리면 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에서는 본능이 강하여 이성이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탐크루즈가 흘린 눈물은 다시 이성을 되찾고 '단 하루 사이의 정신적 외도'에 대한 소중한 후회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지만 말이다. (물론 이 장면을 해석하는 시각은 각기 다를 수 있다.)
 

III. 영화 구조와 스토리에 나타난 '본능'과 '이성'의 갈등과 그 해소.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두 부부는 너무나 건전하다. 특히 탐크루즈는 '성욕'이라는 억압된 본능을 인식조차 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아내가 해군 장교와 정사를 나누고 싶었다고, 그 해군 장교가 원했다면 가정을 버릴 정도로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불륜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과거의 고백을 듣게 되고, 이로 인해 충격에 빠진다. 그 충격은 아내와 해군 장교가 정사를 나누는 상상으로부터 시작되며, 실제로 자신이 외도를 꿈꾸는 완전히 다른 남자로 탈바꿈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실제 그 고백은 매우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잠재된 성욕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들이 '남자는 능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인 것' 이라는 편견에 대한 반기를 든 모습을 니콜키드만이 그대로 보여 주었다.

완전히 다른 남자가 된 탐크루즈는 자신의 고객의 딸의 유혹을 받기도 하고, 창녀의 초대를 받기도 하며, '그렇게 아름다운 여성을 본 적이 없다'는 친구의 말에 그곳을 찾아 떠난다. 그가 겨우겨우 찾아온 곳은 집단 난교가 이루어지는 가면 파티이다. 

이 난교 파티야 말로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의 성욕'이라는 본능을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해 준다. 그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은 일반인이 아닌 특별한 권력을 가졌거나 부유한 '극소수' 이다. 일반인들은 '암호'를 모르면 참석할 수 없는 그들만의 파티인 것이다. 권력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도의적 바운더리를 스스로 거부하고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의 자리인 것이다. 비밀스런 공간에서 "가면을 쓰고" 자신들의 욕망을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들이 형성한 바운더리를 스스로 파괴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으므로, 남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장면을 목격한 '탐크루즈'에 대한 죽음의 위협을 가하면서까지 그러한 비밀을 지키고자, 그러한 모순을 드러내지 않고자 한다.

이러한 난교 장면이 가져다 주는 의의는 무엇일까? 단지 인간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일 뿐일까. 아니다. 그것이 당당하다면, 억압된 윤리가 아니라면 비밀스런 공간에서, 가면을 쓰고 행해질 이유가 없다. 바로 제도화된 사회의 바운더리 내에서는 표출된 성욕은 자연스러울 수 없고 금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한 제도화된 사회를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 '모순'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부유하다고 해서 성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은밀히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과 갈등은, 꿈에서 수많은 남자들과 집단 난교를 벌였던 니콜 키드만의 눈물과 사교 파티에서 돌아와서 탐크루즈가 흘린 눈물로 해소되는 과정을 거친다.

왜 탐크루즈가 그 파티에 갔던 시기에 니콜 키드만은 그 꿈을 꾸었을까. 니콜키드만은 꿈을 꾸고 있는 당시에는 괴로워했던 것이 아니라 신나게 웃고 있었다. 꿈속에서는 그 상황을 즐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니콜 키드만의 성적 욕망이 실제 난교파티를 벌이던 뭇 권력자들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 그들 부부가 흘렸던 눈물, 그것은 인간이 가진 이성을 의미하는 듯 하다. 즉 그러한 성적 욕망의 표출을 확인하고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그들 삶에 이성이라는 영역이 살아있음을 절실히 보여주는 것이고, 그러한 이성이 살아 있는 한 성욕에 대한 강박이나 이로 인한 죄의식이 부자연스럽지 않음을 반어적으로 드러내주기도 한다.

집단난교가면파티가 인간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면, 그 눈물은 인간이 가진 이성의 칼날을 차분하게 보여주면서 대조를 이루었다. 정말 잘 그려낸 본능-이성 간의 대칭적인 모습이다. 본능과 이성의 갈등 상황에서 삽입되었던 음악들은 그러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 충분히 일조했다.


IV. 생각해 보기 : 외도는 정신적 외도를 포함하는가?

한편, 영화읽기가 '새로운 관점' 을 창출해낼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면,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짚고 넘어가라고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탐크루즈와 니콜키드만, 이들 부부는 마음 속으로, 상상 속으로 분명히 외도를 했지만, 서로에게 매우 충실했고, 결국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있다. (물론, 결말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다.) 육체적 외도를 하지 않았으나, 정신적인 외도를 한 경우 이를 외도로 보아야 할 것인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영화의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V. 마치며.

이 영화는 '웃기는 재미'는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무언가 계속 퀴즈를 푸는 느낌을 받으며 영화를 보게 된다. 탐크루즈가 집단 성교 파티에 갔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무지의 지루함을 제외하고는, 16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명작은 괜히 명작이 아니다. 결혼 후에 다시 이 영화를 본다면 또 한 번 지금과는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 나도 많이 컸다. 꼬맹이일 땐 이런 생각 하나도 못했는데,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